‘아마도 난 80살 정도까지 살지 않을까?’
근거 없는 상상 속에서 시작된 2021년, 내가 상상한 인생의 정확히 절반이 되는 시기였다. 40대 초반,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나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떠올렸다. 단지 회사를 잠시 쉬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 시기였다.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전엔 광고 전단이나 세일 문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1+1, 한정판, 한시적 혜택 같은 문구에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건 단순히 나이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의 변화였다. 무언가를 ‘더 가지는 것’보다 ‘덜 흔들리는 것’이 중요해진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소비뿐 아니라 일, 시간, 관계까지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쇼핑몰 탭을 열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던 과거의 내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런 불필요한 소비들이 자연스레 사라져갔고, 그 변화를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택배로 날아오는 이쁜 쓰레기들이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며, 아내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좀 철이 들어간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정작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육아휴직,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
그 시절 육아휴직은 여전히 흔치 않았다. 특히 내가 일하던 곳은 군대의 그것과 닮은 전형적인 남초 조직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연차조차 눈치 보며 써야 했으니, 육아휴직을 꺼내는 건 거의 ‘사회적 자살’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 아이들의 얼굴조차 보기 힘든 일상, 그리고 13년간 쉼 없이 달려온 사회생활이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자라났다.
그 무렵부터 나는 ‘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회사를 쉬겠다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육아휴직을 고민한다는 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재정비하는 과정이었다. 아직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절반쯤 그 길 위에 올라 있었다.
결심의 순간, 가족과의 대화
육아휴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회사보다 먼저 아내의 이해가 필요했다. 막연히 “쉬고 싶다”고 말하기엔 철없는 투정처럼 들릴 게 뻔했다. 며칠 동안 말없이 고민을 이어갔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앉아, 불빛이 흐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그 말을 연습했다. 그리고 어느 저녁, 조심스레 꺼냈다. “나, 육아휴직 좀 해볼까 생각 중이야.”
그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미소 지었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겠어.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 다 같이 시간을 보내보자.” 그 말은 허락이자 격려였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선택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성장할 기회라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의 인생 방향을 다시 정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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